왜 우리는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싸우는가? 정말 상대방이 ‘틀려서’일까?
대한민국은 지금 끝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정치적 성향, 부동산 보유 여부, 성별, 세대, 심지어 출신 지역까지, 거의 모든 이슈에서 사회는 둘로 나뉜다.
상대방의 의견은 들을 가치도 없는 궤변으로 치부되고,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만이 정의이자 상식이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우리 사이에 세워진 듯, 소통은 단절되고 적대감만 증폭되는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이는 단순히 의견 차이를 넘어, 감정적 소모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문제의 근원은 상대방의 '악의'나 '어리석음'이 아닐 수 있다.
진짜 원인은 우리 뇌의 작동 방식, 즉 '생각의 시스템'에 숨어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 1'이고, 다른 하나는 느리고 분석적인 '시스템 2'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에너지 소모가 적은 시스템 1에 의존해 살아간다
이 시스템 1은 효율적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라는 시스템적 오류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인지 편향은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할 때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 내가 속한 집단은 옳고 상대 집단은 틀렸다고 믿는 '내집단 편향'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우리가 겪는 극심한 사회 갈등의 상당 부분은, 이성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인지 편향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인지 편향이 뇌의 기본 설정값과 같다면, 우리는 영원히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희망은 우리가 이러한 편향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편향의 안경'을 끼고 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이는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는 생각의 '습관'에 가깝다.
인지 편향의 존재를 인정하고, 의식적으로 '느린 생각'을 활성화하는 사회적, 개인적 노력을 통해 우리는 보다 합리적인 소통과 판단을 할 수 있다.
최선의 실천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바로 '자동 반응'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특정 이슈에 대해 강한 분노나 확신이 밀려올 때, 즉시 반응하는 대신 잠시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지금 시스템 1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으로는 '사회적 인정'이라는 보상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한국 문화는 금전적 보상만큼이나 사회적 인정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보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이끄는 사람에게 더 많은 사회적 인정과 주목이 돌아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 플랫폼, 언론, 교육 현장에서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그것도 사람 본성이라 바뀌기 힘든 것 아닌가?"
물론 쉽지 않다.
인지 편향은 수십만 년에 걸쳐 형성된 생존 본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대니얼 카너먼이 밝혀낸 '피크-엔드 규칙(Peak-End Rule)' 실험이 좋은 증거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의 전체 길이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의 경험으로 전체를 기억한다.
이는 우리의 기억과 판단이 얼마나 비논리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의 경험과 판단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우리 생각의 오류를 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오류를 넘어설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 이론의 중심에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2024)**이 있다.
그는 이스라엘계 미국인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다.
동료 연구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대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며, 심리학을 경제학에 접목해 인간 행동을 보다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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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 - 이 글에서 다룬 모든 내용의 시작점이자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우리 생각의 두 시스템과 다양한 인지 편향의 사례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97589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 교보문고
생각에 관한 생각 | 300년 전통경제학의 프레임을 뒤엎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의 첫 대중교양서!새로운 인간학의 지평을 연 현대의 고전,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의 바이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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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머니볼 (Moneyball, 2011)> - 데이터와 통계(시스템 2)를 통해 기존 야구계의 편견과 직관(시스템 1)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을 이뤄내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인지 편향을 이겨내는 과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https://www.netflix.com/watch/70201437?source=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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